문주혜 개인전 < SKINCARE ROUTINE >

 

 

 

제4회 처음의 개인전 공모 선정작 ┃문주혜 개인전 
< SKINCARE ROUTINE >


2020.9.11 – 9.27

장소 : 레인보우큐브

텍스트 : 이가린
디자인 : 오연진
음악 : 롸디(도원삼)

기획 : 김성근
후원 : 서울문화재단

 

 

 

 

 

 

 

 

《Skincare Routine》을 위한 글_이가린

 

 스킨(skin)이란 게임을 플레이할 때 캐릭터의 외형이나 의상, 기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장치로 일컬어지며, 그밖에도 소프트웨어의 외형 변화와 관련된 다양한 의미를 포괄하여 사용되는 단어이다. 특히 독립적으로 구성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이하 MMORPG)에서는 특정 캐릭터나 시즌에 맞추어 음성 대사나 포즈, 디자인, 기술적 효과, 기능적 개선이 들어가는 스킨을 출시하면서 게임 스토리와 세계관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몰입도를 높이고는 한다.

  과학적 인문학에 대해 연구하는 문학자 조나단 갓샬(Jonathan Gottschall)은 MMORPG를 대표하는 게임 와우(WoW, World of Warcraft)를 예로 들면서 여러 행성과 인종, 파벌, 문화, 종교, 언어로 이루어진 온라인 우주의 세계 속에서, 게임 플레이어들은 마치 쓰이고 있는 소설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 바 있다. 즉 게임 플레이어들이 이미 쓰여진 스토리텔링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는 스토리의 등장인물이 되는 동시에 저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때 스킨은 MMORPG에서 초월적인 시공간 속의 초자연적인 존재로 분하는 플레이어들에게, 현실의 세계를 벗어나 디지털 속에 창조된 세계관에 대한 실제적인 감각을 부여해주는 중요한 요소로 활용된다.

  《Skincare Routine》에서 문주혜는 앞서 언급한 MMORPG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킨의 전형화(典型化)된 형태를 주요한 소재로 도입하고 있다. 게임 캐릭터에 스킨을 입히듯 화면 위에 스킨 하나, 또 하나가 겹쳐져 있다. 그 모습을 묘사하자면 이런 것이다. 늘어선 촛대에 점화된 불빛으로 드러난 어렴풋한 형상, 그 뒤 번쩍이는 불꽃과 함께 나타난 강렬한 기운, 눈을 돌렸을 때 텅 빈 하늘에 흩날리고 있는 리본, 금속이 맞닿는 소리와 함께 조여 오는 쇠사슬…. 어떤 특정한 이야기를 모티프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명시하기는 힘들지만 우리는 이러한 장면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 스킨들을 활용해서 상상할 수 있는 모험담이 담긴 판타지 장르는 우리에게 꽤나 친숙한, 클리셰(cliché)와 같은 장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우리는 이러한 클리셰를 마주하면 금세 한 편의 판타지 서사물을 상상해낼 수 있다.

 그러나 화면 위에 스킨이 놓여 있는 방식은 익숙하게 판타지 서사 속으로 들어가려는 우리의 행위를 방해하려는 듯 보인다. 가장 상위에 얹어져 있는 깃털이나 구름, 식물의 형상을 한 테두리 장식 스킨이 먼저 우리를 막아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상 세계의 안쪽 공간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평면을 타고 흐르던 우리가 때때로 마주하는 것은 그 아래에 수직 수평으로 놓여 있는 갈색의 격자이다. 이 격자는 얄팍한 캔버스 천이 감추고 있을 나무틀을 상기시키면서 우리를 계속 평면 위에 머무르게 만든다. 이와 같은 지연된 진입 방식은 마치 화면 위의 스킨들이 3차원의 공간에 함께 어우러져 놓여 있다기보다는, 각각의 스킨이 2차원의 투명한 막으로서 겹겹이 축적되고 있는 것과 같은 감각을 전달해준다. 다시 말해 여기서 문주혜는 스킨을 가지고 한 편의 판타지 서사물을 만들어내려고 하기보다, 스킨이 운용되고 있는 통상적인 루틴 그 자체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디지털 세계 속에서 활용되는 스킨이 가상현실에 대한 실제적인 감각을 부여해주는 역할을 한다면, 현실 세계에서의 스킨은 어떤 대상에 대한 실제 이미지 혹은 그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도록 조작된 이미지에 대한 환상적인 감각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용도로 사용되곤 한다. 예를 들면, SNS에 걸어둔 몇 개의 프로필 스킨으로부터 시작해서 오늘 당신이 고른 셔츠와 안경, 다리를 꼬고 앉는 모션, 천천히 걷는 습관, 약간 낮게 내는 목소리 톤 등은 각각의 아이템이 내포하고 있는 클리셰를 활용하여 특정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스킨 운용의 일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문주혜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그리고 초월적인 세계와 범속적인 세계 사이의 어떤 화면을 통해, 이처럼 실제의 감각과 환상의 감각을 오가는 우리의 스킨 사용 루틴에 대한 이야기를 던지고 있다.

 

 

 

 

 

 

집단 3, 장지에 채색, 색연필, 162 x 261cm, 2017

 

 

 

 

 

 

 

 

 

 

 

 

 

 

 

집단 5, 장지에 채색, 색연필, 116.8 x 91cm, 2017

 

 

 

 

 

 

 

 

 

 

 

막힌 풍경, 장지에 피그먼트 프린트, 채색, 락카칠, 27.5 x 22cm, 2018

 

 

 

 

 

 

 

(왼쪽) 어두컴컴한 풍경, 장지에 피그먼트 프린트, 채색, 락카칠, 38.5 x 27.5cm, 2018
(오른쪽) 겨울 오후 5시 30분 풍경, 장지에 피그먼트 프린트, 채색, 락카칠, 38.5 x 27.5cm, 2018

 

 

 

 

 

 

 

 

 

 

 

 

 

 

 

 

 

 

 

섀도우 게이볼그+10, 장지에 채색, 100 x 100cm, 2020

 

 

 

 

 

 

 

 

 

 

 

 

 

 

 

(왼쪽) 정령의 왕, 장지의 채색, 50 x 50cm, 2020
(가운데) 세라핌의 날개, 장지에 채색, 50 x 50cm, 2020
(오른쪽) 민첩해지고 민첩해지고 행복해지는 망토, 장지에 채색, 50 x 50cm, 2020

 

 

 

 

 

 

 

piece of peace, 장지에 채색, 100 x 100cm, 2020

 

 

 

 

 

 

 

우로보로스로 자동이동 555km, 장지에 채색, 100 x 100cm,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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