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예진 개인전 <계단에 난관이 없으니 조심하세요>

 

 

 

제4회 처음의 개인전 공모 선정작 ┃전예진 개인전 
< 계단에 난관이 없으니 조심하세요 >

 

2020.5.22 – 5.31

 

장소 : 레인보우큐브 (합정동 91-27)
참여작가 : 전예진
 : 전영진
기획 : 김성근
사진제공 : 고정균, 김성근

 

 

 

 

 

 

 

절묘하다.
그것을 말하려고 하면 ‘절’을 강조하며, 그렇지만 어딘가 말이 늘어지도록 말해야 할 것만 같다.
왜 그렇게 절묘한 타이밍에 일어나는지.
그런데 다시 정신 차리고 네게 묻고 싶다.
정말로 절묘했는지.
반복되는 것 속에 익숙해져 네게 부여된 ‘기미’들을 알아차리지 못한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그렇지만 너의 탓은 아니다.
그저 나의 과민함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앞으로 ‘절묘하다’를 말할 때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게 ‘절’을 늘려 말하자.
듣는 사람이 그 기묘함에 귀를 기울이도록 말이다.
그와 동시에 왠지 모를 오싹함에 자신의 팔을 한번 쓰다듬도록 말이다_전예진

 

비뚤게 자세히 보면_전영진

식물을 사랑하는 주부 A는 나무를 예쁜 수형으로 만들기 위해 가지를 철사로 묶는다. 한 주간 숲을 밀어 도로를 확장하는 현장에서 일한 건설업 종사자 B의 취미는 등산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친환경 유기농 채소를 판매하고 있는 C는 신선하고 청결한 배송을 위해 비닐을 사용한다. 풀 내음을 좋아하는 D는 예측 불가능한 산보다는 잘 조성된 식물원을 더 좋아한다. 최근 부친상을 치른 E는 부친이 사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편히 쉬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산을 말끔하게 정돈하고, 좋은 돌로 만든 비석을 세웠다. 때로 자연을 향한 욕망이 선을 넘으면, 자연을 훼손하는 쪽으로 선회하게 된다.

삶 속 아이러니는 흔한 먼지처럼 몸 곳곳에 붙어 있다. 예술이 그 지점을 가리켜 그것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 그것을 없애던, 없애지 않던, 우리의 정신에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한다. 전예진은 삶에 변수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변수가 되지 못하는 (정지된) 이미지 의 서사를 압축하거나 길게 늘이는 방식으로 미술이 어떻게 현실에 개입되고, 현실에서 어떤 사건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를 실험한다.

스토리의 한 컷, 혹은 여러 컷을 배치해 재현하는 것이 흔한 방식의 회화라면 전예진의 드로잉은 수 개의 이미지 레이어와 텍스트 레이어를 한 장의 화면에 겹친 방식으로, 영상은 연결되는 컷 사이사이 책갈피 형식의 상이한 컷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이 화면들은 대체로 자연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자연스러운’이라는 형용사의 아이러니와 다분히 의도적임에도 타의에 의해 수동적인 체하는 ‘어쩔 수 없다’라는 문장의 아이러니에 대한 표현이다. 드로잉에서는 주로 자연(가공품)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로 예를 들어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아 신성시되는 수호 석과 조경에 사용되는 수만 개의 돌을 대하는, 같은 물질로 이루어진 하나의 가공되지 않은 자연물에 대한 이중적 태도,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조성되는, 철저한 인간 맞춤형의 인공 숲, 도시 환경에 맞지 않는 수종의 나무를 심은 뒤, 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핑계로 매년 꽃이 피기도 전에 엄청난 비용으로 가지치기를 하는 행정, 이미 한 토양에서 잘 자라난 나무를 뽑아 더 나쁜 환경에 심어지는 가로수, 거센 바람을 막아주는 것은 좋지만, 창을 가리는 것은 허용할 수 없는 단지 내 조경 등의 끊임없이 가공되는, 자연 그대로이지 못한 자연을 대하는 모습이다. 둘째는 주로 영상에서 쓰이는 것으로 앞선 예와 정반대로 이미 기능이 말소되어 아무런 존재감도 가지지 못하지만, 경험이 축적되어 스토리가 쌓인 공산품, 기성품, 추억이 담긴 물건, 다시 만날 수 없는 인물 등에 대한 연민과 호기심을 통해 ‘보통의, 일반의, 흔한’ 삶에 일어난 작은 사건, 균열, 자각으로 변화되는 삶을 관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겹쳐진 사물에 대한 감각의 환기로 예를 들어 콘크리트처럼 자연의 돌과 인공의 시멘트가 합쳐진 소재를 이용해 ‘어울려진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자연-어우러짐-문명’을 넘나들고, 옮겨 다니며, 합치고 나누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아이러니한 사건과 그 주변의 감정들을 추적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을 하나의 이미지로 상정해 그 이미지에 남겨진 흔적들 사이의 연관을 가늠하고, 이미지가 가진 기운을 통해 사건을 상정하거나 이미지가 가진 고정된 의미와 가변의 가능성을 예측해 본다. 나무를 올곧게 지탱하기 위해 나무로 지주목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더 나아지기 위해 이미 나은 것을 훼손하는 굴레에 갇힌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표어로 나무 심기 운동을 수십 년간 벌이고 있는 회사는 대체로 나무를 소재로 하는 제품을 만든다. 햇빛에 반사되어 일렁이는 반짝이는 것 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그렇게 아이러니로 점철된 세상에서 용인되는 흔한 서사에 불과하다. 전예진은 그 흔한 장면을 이야기한다. 기꺼이 변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운동도 아닌,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씁쓸한 용인도 아닌 그저 우리의 삶이라는 블랙코미디를 날카로운 유머로 전한다. 허리를 숙여 바닥을 보는 것보단 하늘을 올려다보는 편이 낫다 는 자조로부터 정작 들여다보아야 할 가까운 것은 외면하고, 먼 산만 바라보는 흔하고 낯선 우리의 삶을 되새겨보게 하는 그의 작품은 특히 요즘처럼 자연이 인간을 향해 일어서는 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그의 작품을 통해 반환점에 와 있기에 더 이상 전환점은 없는 시선을 관객이 갖게 되길 기대해본다.

 

 

 

 

 

 

 

유통단지, Single channel video, 17′ 8″, 2019

 

 

 

 

 

 

 

 

 

 

 

박힌 돌, Single channel video, 19′ 40″, 2019

 

 

 

 

 

 

 

귀뚜라미, Single channel video, 6′ 59″, 2017

 

 

 

 

 

 

 

 

 

 

 

대신 날 보호해줘, 종이에 연필, 먹지, 42×59.4cm, 2020

 

 

 

난간, 종이에 연필, 36×26.5cm, 2019

 

 

 

오직 이 대야 안에서, 종이에 연필, 먹지, 36×26.5cm, 2019

 

 

 

기념수, 종이에 연필, 먹지, 36×26.5cm, 2019

 

 

 

틈은 언제나 있는 거야, 종이에 연필, 먹지, 36×26.5cm, 2019

 

 

 

그것마저, 종이에 연필, 먹지, 36×26.5cm, 2019

 

 

 

 

 

 

 

(위) 힘껏 내려쳐, 종이에 연필, 먹지, 36×26.5cm, 2019
(아래) 화단에 물 주듯, 종이에 연필, 먹지, 36×26.5cm, 2019

 

 

 

‘돌고 돌고 돌고…….‘, 종이에 모노타이프, 35×20cm, 2018

 

 

 

오직 주어진 흙에서만, 종이에 모노타이프, 35×20cm, 2018

 

 

 

 

 

 

 

(위) 고층건물을 지키는 수호석, 종이에 모노타이프, 35×20cm, 2018
(아래) 시멘트에 돌을 섞어 콘크리트를 만들어, 종이에 모노타이프, 35×20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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