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들돌 개인전《웅얼벽화합창》
2025 처음의 개인전 공모 선정작
정들돌 개인전《웅얼벽화합창》
murmur-mural ensemble
2025. 7. 25 – 8. 10
오후 1시 – 7시 (월, 화 휴무)
레인보우큐브 (마포구 토정로2길 6-19)
작가 | 정들돌
서문 | 배혜정
진행 | 김성근
주최 | 레인보우큐브
디자인 | 김경수
사진 | 박도현
도움 | 김상소 정상운 하지민 황예지
허접하고 자그마한 이 종이벽들은 내게 작동하는 온갖 힘을 닮은 채 발치에 치이며 나를 막고 또 나를 인도한다.
다양한 종이와 핸드메이드 한지, 석고 등을 층층이 쌓아 종이벽을 만든다.
그 위에 회색조의 파편적 형상, 외국어, 시와 같이 불완전한 번역을 요구하는 부서진 언어를 겹겹이 얹어 조각적 평면의 벽화를 그린다. 
그림은 중심 없는 확장된 풍경이 되어 불협화음의 다성적 앙상블을 이룬다.
벽은 세계의 힘이자 나 스스로를 향해 지어 올린 자화상이다. 
‘벽을 세우고 세워도 벽은 벽이 되지 않고 나는 벽이 되지 않‘*는다. 나의 벽은 부단히 최선으로 어긋나며 어쭙잖은 매일의 오해를 닮았다.
시적 내러티브의 산재한 파편의 몸들은 지시적인 하나의 언어가 되기 실패한다. 
이들은 서투른 진심의 겹을 이루는 상상적 언어로 말을 건다.
이 필패하는 번역 앞에서 우리는 묵음을 남기는 마음을 익힌다. 
확고함 앞에서, 휘어져 겨루는 방법을 알게 된다. 
덧없는 웃음의 포즈, 정서적 태도로서 위악을 취해 힘을 흉내내고 비튼다.
거리나 공간에 속하며 무수한 개인, 공공적 축적의 층위를 이루는 벽화로서, 
생명의 흔들리는 매일과 그 속에서 웅얼대는 목소리들이 합창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기록한다.
이러한 합창은 존재의 아이러니한 복합성을 관용하는 바보들의 선율이다. 
염탐하듯 남몰래 기어걷는 불구의 괴물들을 향해, 애상적 찬가를 함께 부른다.
_작가노트 중
*이수명, 「불가능한 벽」,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문학과지성사, 2011

전시 서문_배혜정
웅얼
베어나온 얼룩들 사이로 어슴푸레 피어오르는 형상들, 분명히 읽히지 않는 단어와 글. 정들돌에게 그림은 배접한 종이들이 자아내는 그 “생겨남”에 응답하는 과정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보통 그릴 대상이나 이야기를 종이, 벽, 캔버스와 같은 화면에 옮겨 그리는 일이다. 그러나 정들돌은 종이를 그 대상으로 삼은 한편 종이를 탐구하고 종이들로 토대를 구성하며 그럼으로써 종이가 환기하는 것을 그린다. 여기서 종이는 그리고자 하는 바를 담는 도구 내지 배경인 것이 아니라 작품의 시작이자 그 한 부분이 된다.
작업과정을 거쳐 종이에서 “생겨난” 형상들, 글들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의 시선에 응답한다. 작가가 “부서진 언어”라 부르며 화면에 풀어놓은 글(종종은 단어이거나 자작시, 시의 인용구이기도 하다), 모순 형용이라 부르는 그리기의 과정¹은 호명하기 보다는 함께 감각하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함께 서기를 요청한다. 형상을 비롯해 그림 속 글은 맥락도 선명도도 분명하지 않고 흐릿하기에 웅얼거리고 그렇게 우리의 읽기의 과정은 유예된다. 이렇게 관객은 보이는 것에 깊숙이 개입하게 되고 각자 해독자의 역할을 맡는다.
벽화
《웅얼벽화합창》에서 작가는 종이벽을 만들어 화면을 삼는데서 나아가 낮은 종이벽으로 구성한 설치 작업을 공간에 선보인다. 벽이라기에는 아주 낮은 편이지만 그 벽이 제 키를 훌쩍 넘기는 작은 형상과 함께 있기에 그가 제시하는 것이 벽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벽은 공간을 구획하고 동시에 그 내부의 주체를 제한한다. 벽의 폭력성은 항거한 시민을 막아서는 차벽과 같은 것에서 그 위용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여기 이 낮은 벽은 넘어갈만한 벽인 동시에 벽을 새삼 환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벽은 벽이지만 넘을 수 있기에 벽이 아니며 우리가 이미 넘은 지난 겨울의 벽을 환기하기에 또한 봄을 넘어 선 것에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벽의 폭력적 힘은 함께 넘어선 연대한 주체의 뒤에서 패배한다.
합창
박스를 덮으면 박스는 나를 덮은 채로 그냥 있었다.
잠이 들면 잠이 사라져 박스는 사라진 자를 덮은 채로 있었다
– 이수명, 「박스를 덮고」, 『마치』, 2014
그림을 이룬 벽에, 전시장을 구획한 벽들에 작가는 합창이라 이름붙였다. 여럿이 부르지만 결국 하나인 노래, 합창에서 구성원들은 상대의 노래를 들으며, 이 여럿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하나의 노래를 상상하며 부른다. 《웅얼벽화합창》에서 합창은 종이들과 그에 응답한 정들돌의 글과 그림과 또 종이들의 합창이 만들어내는 벽들이 모두 하나로 부르는 노래일 것이다. 그리고 그 노래는 아스라이 떠오르는 “잘 자(Sleep tight)”라는 말과 “애도”라는 문자, 소수부족의 언어인 미엔(Mien)어와 같이 미약한 것들을 상기하고 그 순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자, 이제 당신이 함께 이 노래를 부를 차례이다.
¹ 작가 홈페이지 https://www.duldoljimi.com/Works/1748166821499
사진: 박도현 |사진 제공: 정들돌


개방형 선분 (작게 친 도형 위나 아래가 뚫려있는 도형 어딘가가 뚫려 있어 그래, 모서리, 획 점 이 이루는 이 틀은 오픈형인걸 폐쇄형이 아닌걸.)
2025, 갱판지, 화이트젯소, 겔, 페이스트, 가변설치




 (niam, ‘엄마’ in Pahawh Hmong) 2025, 수지점토, 5 × 6.5 × 5cm
(niam, ‘엄마’ in Pahawh Hmong) 2025, 수지점토, 5 × 6.5 × 5cm


eallusgnaggnag, 2025, 갱판지, 화이트젯소, 원고지, 연필, 종이테이프, 나무, 못, 49 × 31 × 2.8cm






色, 2025, 종이캔버스, 나무판, 화이트젯소, 연필, 볼펜, 19.6 × 23.8 × 5.8cm


엄마!, 2025, 수지점토, 5 × 6.5 × 5cm





벽을 세우고 세워도 벽은[1], 2025, 혼합종이, 겔, 화이트젯소, 73 × 20.5 × 28cm


you are a picky eater but polyphagia. 너는 편식가, 그러나 잡식성이다.
2025, 혼합 종이, 흑연, 화이트젯소, 겔, 페이스트, 297 × 246 × 1cm






I am a picky eater but polyphagia (나는 편식가, 그러나 잡식성이다.)
2024, 혼합종이, 흑연, 유화, 먹물, 색연필, 103 × 118cm





여자애, 2022, 2025, 혼합종이, 연필, 31.6 × 22cm, 31 × 27.8cm, 32 × 30.5cm


벽은 벽이 되지 않고 나는 벽이 되지 않고[1], 2025, 혼합종이, 겔, 화이트젯소, 69 × 26 × 21cm



여자애, 2022, 2025, 혼합종이, 연필, 24.8 × 30.8cm


Hallo שלום مرحب ا
2024, 2025, 혼합 종이(닥종이, 한지, 마분지 등), 흑연, 화이트젯소, 겔, 페이스트, 255.4 × 246 × 1cm









미명을 부르고 싶어, 2023, 미완성 파편, 레진, 글루건, 제스모나이트, 석고, 10 × 11 × 6cm



기지문, 2025, 갱판지, 화이트젯소, 47 × 29.6 × 18.6cm


ντιγόνη (Antigón )
2025, 달걀껍질, 글루건, 30.5 x 15.9 x 2.8cm, 18 x 12.2 x 4.9cm, 29 × 4.8 × 2.8cm






부마린[2], 2025, 혼합종이에 흑연과 유화, 151.8 × 151 × 1cm





찌루는 쇠 굽능 쇠 내가 든 빛나는 은색의 쇠는 칼인가 나는 너를 칼로 찌르지 않고 얇은 철사로 너의 흐름을 느끼고 그에 따라 구부리며 모양을 느끼고 싶다,
2025, 장지에 흑연과 유화, 88 × 132 × 18cm







its me. i am error mirror
저예요. 제가 범인이에요. 제가 이 굴절을 만들어냈어요.저는 에러 미러예요. 더러운 유리창이에요. 당신도 다르지 않아요.
2025, 거울지, 종이, 먼지, 22 × 28.9 × 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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