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개인전《순공간 purely ongoing》
김소연 개인전
《순공간 purely ongoing》
2025. 8. 29 – 9. 14
레인보우큐브 (마포구 토정로2길 6-19)
작가 | 김소연
서문 | 배혜정
기획 진행 | 김성근
퍼포머 | 김소연, 은산
제작 도움 | 정유빈
사진·영상 | 고정균
디자인 | 모닥불
주최·주관 | 김소연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2025년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 프롤로그 | 글_배혜정 |
선을 긋고 지운다. 지우는 것은 그려진 선을 무효화 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선을 그은 시간과 지우는 시간 속 존재와 행위는 펼쳐져 흔적으로 남는다. 그어진 선을 지우고 연거퍼 다시 긋는 것,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쉬움에 채 지우지 못하고 그 행위의 과정을 펼쳐놓는 것은 생을 살아내는 모든 존재에 가 닿는다. 작가가 재료로 삼은 연필, 콘테와 숯과 같은 것들은 나무로서의 생을 다하고, 또는 불의 시간을 견디어 우리에게로 온다. 그 지고의 시간은 작가가 사용하는 또 다른 물질인 파라핀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인데 파라핀 역시 석유나 석탄, 셰일 오일과 같이 지구의 길고 뜨거운 시간을 견뎌 낸 퇴적물로부터 나오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집적물로부터의 예술은 그렇게 존재의 시간을 드러내며 작가의 손에 의해 다시 하나의 흔적과도 같이 운명을 짊어진다.
긋기와 지우기의 과정을 통해 반복해서 만들어지는 검은 드로잉들을 모아 작가가 붙인 이름은 〈Weathers〉다. 그 까만 종이들에 그는 왜 날씨라 이름 붙였을까? 여기서 작가는 이 드로잉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한편 그렇게 만들어진 각각의 시간과 과정이 존재했다고, 그 존재의 순간들이 같지 않다고 우리에게 다시 한번 각인하고자 했던 것 같다. 맑은 날과 흐린 날이 모여, 고된 시간과 기쁨의 시간이 그렇게 축적되어 생을 이루듯 그 다름을 흔적으로 남겨 우리의 감상이 그저 하나로 귀납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Falling Moment〉는 하나의 선들이 중심을 함께하여 그어짐으로써 별을, 더욱더 중첩되어 원을 이루는 형태를 반복해서 그려나가는 작업이다. 이 연작은 형태들이 집적된 긴 드로잉 설치로 보여지기도 하지만 작가가 이 작업을 퍼포먼스로 보여주고자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이 그리기의 시간을 미분하여 보여주는 동시에 그 시간을 타인과 공유하는 과정으로 구현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선 하나하나를 긋는 과정의 시간을 집적함으로써 그림이 작품이 되기 전 선이 그어지는 생성의 순간들에 찬가를 보낸다. 또한 상대 퍼포머와 교차할 그 시간은, 사건으로 생겨날 그 순간 결과가 무엇이든 나와 타자와의 만남에서 생겨나는 모든 생성의 순간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된다.
한편, 〈Holding Ashes〉에서 작가는 숯 입자를 반죽해 세워 기둥을 올렸다. 기울어진 그 기둥은 레인보우큐브로 들어서는 순간 시선의 수준에서 하나의 획으로 먼저, 전시를 둘러보는 가운데 존재로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된다. 굳이 가루를 반죽해 쌓아 올린 이 기둥에서 앞서 〈Weathers〉에서 김소연이 의도한 다름에 관한 인식이 중층적으로 작동함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시도의 순간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루듯 작디작은 가루들이 모여 세계를 가로지르는 기둥을 만드는 것. 그렇게 개별로 그 가치가 인식되기 힘든 획, 가루는 모이고 또 쌓여 눈에 보이고 나아가 세계를 받치는 일이 된다.
파라핀을 녹인 액체에 숯가루를 드로잉하듯 떨어뜨려 만든 유연한 형상들에 작가는 〈Grounded Cosmos〉라 이름 붙였다. 작가는 파라핀에 숯가루로 그려 굳힌 벽돌의 형상과도 같은 직사각형의 형태를 찍어 냈는데, 벽돌은 인류가 아주 오래전부터 튼튼한 건축 구조물을 짓는 데 쓴 재료다. 즉, 파라핀 플레이트의 집합은 벽돌이 건축물을 구성하듯 숯과 파라핀으로 세계의 구성을 은유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금세 김소연의 파라핀 벽돌은 양가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파라핀 벽돌은 여느 벽돌처럼 시간을 견디어 내는 건축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다지 높지 않은 열에도 이 파라핀 덩어리는 녹아내릴 것이고 작은 힘에도 금방 부서질 것이다. 그럼에도 쌓아 올린 처연한 벽은 찬란하고 영원할 것 같은 그러한 세계의 한 부분인 듯 보인다. 파라핀의 물성은 액체 상태에서 맞이한 숯가루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굳은 이후에는 빛을 투과해 관객이 영원과도 같은 시간의 한 조각을 염탐하듯 빛으로 경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랜 지구의 물질과의 교감 속에 그가 이룬 세계에서 그의 세계에 대한 시선을 구체화해 주는 마지막 열쇠는 〈The Last Turn〉에 있다. 레인보우큐브에 들어서면서 당신이 〈Holding Ashes〉와 함께 보았을 그 구형의 형태는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정성껏 굴려놓은 눈덩이처럼 보인다. 거뭇거뭇한 얼룩이야말로 지난겨울 애써 굴려 보탠 눈 뭉치에 딸려 온 공터의 흙을 닮았다. 열심히 굴려서 크기를 키우고 단단하게 만들수록 어쩔 수 없이 이 눈덩이가 갖게 되는 땅의 흔적은 시간이 지나면서 녹아내리는 눈과 함께 땅으로 되돌아간다. 그렇게 한때의 찬란한 겨울을 뒤로 하고 다시 맞을 눈을 기대하면서 해를 넘기고 땅과 함께 생을 살아가는 것, 그것 또한 삶의 이치가 아닌가.
에필로그
작가는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 전시를 만들었다. 아니다. 그는 흰색과 검은색, 회색들로 그렇게 명명하여 구분하지 말라고 흰색과 검은색 사이의 무한한 잠재성을 끊임없이 미분하여 펼쳐 놓았다. 여기 세계의 무자비한 규정들을 비껴나는, 비껴난 존재들을 계속하여 조명해 내려는 예술가가 있다. 예술이 이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세계에 한 줄 가치를 갖는다면, 예술이 다름과 작음의 가치를, 예술만이 잠재성의 세계를 조명하여 드러내는 역할을 오롯이 수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The Last Turn, 2025, 숯가루, 파라핀, 80 × 80 × 120cm







Grounded Cosmos, 2025, 숯가루, 파라핀, 가변 설치




Holding Ashes, 2025, 숯가루, 밀가루풀, 가변설치







Falling Moment: Rainbowcube, 2025(2024~), 트레팔지 위에 연필, 나무, 가변 설치




Falling Moment, 2025, 트레팔지 위에 연필, 22 × 40 × 4cm



Weathers, 2025(2021~), 종이 위에 콘테, 지우개, 가변 설치





Black Mountain, 2025(2021~), 콩테, 지우개, 가변 설치

Weathers, 2025(2021~), 종이 위에 콘테, 지우개, 가변 설치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작가 본인 또는 전시 주최에게 있습니다.
전시에 사용된 작품, 텍스트, 디자인 등은 참여 당사자의 고유 창작물입니다.
전시 연출과 전시 결과물은 작가 또는 기획 주최가 함께 만든 전시 창작물입니다.
